로봇을 도입한 현장에서 위험성평가서를 열어 보면, 기존 양식에 로봇 한 줄이 더해진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로봇이 만드는 위험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충돌이나 끼임 자체는 프레스나 컨베이어 같은 다른 설비에도 있지만, 로봇 작업에서는 그 빈도가 높고 무엇보다 요구 자체가 다르거든요. 사람 곁에서 로봇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동작시키려 하기 때문이에요. 나란히 서서 함께 작업하는 경우만이 아닙니다. 펜스나 센서 없이 로봇을 쓰면서 사람이 그 동작 범위를 지나다니거나, 수리·점검을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까지 포함하죠. 기존 양식으로 이 위험을 평가했다고 적기는 쉬워도, 허용 가능한 수준임을 검증했다고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디서 갈리는지 하나씩 짚어 볼게요.
로봇 위험성평가는 왜 일반 양식으로 부족한가
핵심은 평가의 대상이 다르다는 데 있어요. 위험성평가가 다루는 것은 로봇이라는 기계 단품이 아니라, 로봇·말단장치(EOAT)·작업물·작업자·공정 절차가 하나로 묶인 '응용(Application)' 전체입니다. 로봇 자체가 안전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로봇이 특정 현장에 놓인 방식이 안전하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예요.
사고 통계가 이 구분을 뒷받침합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분석(「자동화 설비(산업용 로봇) 설치 등 안전사고 예방 대책 연구」, 2011~2015년 제조업)에 따르면, 같은 기간 산업용 로봇 재해자 207명(사망 15명 포함) 가운데 64.7%인 134명이 정상 가동 중이 아니라 수리·점검·준비·설치 작업 중에 다쳤어요. 발생 위치로 보면 방책(펜스) 내부가 90.7%를 차지했고요. 사고의 다수는 로봇 단품의 위험이 아니라, 사람이 로봇 영역에 들어가 얽히는 '응용'의 위험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로봇 위험성평가의 출발점은 "이 로봇이 안전한가"가 아니라 "사람과 로봇이 어떻게 공간을 나누어 쓰는가"여야 합니다.
공간 공유 방식이 검증 항목을 결정한다
로봇 시스템의 위험성은 사람과 로봇이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돼요. 세이프틱스는 이를 공간 공유 유형별 위험성 감소 매트릭스(Space-Sharing Risk Reduction Matrix)로 정리합니다. 어떤 공간 공유 방식을 택하느냐가 적용해야 할 표준과 검증 항목을 규정한다는 프레임이에요.
| 공간 공유 유형 | 목적 | 핵심 대책 | 주요 표준 |
|---|---|---|---|
| 분리 공간 (Separate) | 격리 | 고정/가동 가드(인터록), 둘레 방호 | ISO 14119·14120·13854 |
| 순차 공유 (Sequential) | 사람·로봇이 서로의 공간에 진입 금지 | SSM(ESPE·AOPD·ToF 영역 감지) + 최소 안전거리 산출 | ISO 10218-2·13849-1·13855 |
| 동시 공유 (Simultaneous) | 접촉해도 위해 없음 | PFL(접촉 힘·압력 모두 비위해 수준 검증) | ISO 10218-2·ISO/TS 15066·KOROS 1162-1 |
| 공통 | 고장 시에도 안전측 동작 | 가드 견고 고정, 안전관련 제어부(SRP/CS) PL d·Cat 3·SIL 2 | ISO 12100·13849-1 |
Space-Sharing Risk Reduction Matrix는 세이프틱스의 명명 프레임워크이며, 표준 매핑 자체는 ISO/KS 근거다.
이 매트릭스의 핵심은, 어떤 칸을 택했는지에 따라 검증해야 할 항목이 정해진다는 점이에요. 양식에 '평가함'이라고 적는 것과, 각 칸을 실제로 검증해 근거를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한 가지 흔한 오해를 짚어 둘게요. 분리·순차·동시는 셋 중 하나를 고르는 배타적 선택지가 아닙니다. 같은 로봇이라도 둘러싼 방향마다 사람과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는 구역을 나눠 서로 다른 방식을 함께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쪽은 펜스로 분리하고, 다른 한쪽은 라이트 커튼으로 순차 공유를 관리하며, 사람이 직접 협동하는 구역은 PFL로 다루는 식이죠. 많은 자료가 세 유형만 나열하다 보니 '하나만 적용하면 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위험성평가는 로봇 주변을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에 맞는 대책과 검증을 조합하는 작업 — 곧 구역별 조합입니다.
이 가운데 순차 공유(SSM)와 동시 공유(PFL)가 일반 위험성평가로는 따라오기 가장 어려운 두 지점이에요.
SSM 안전거리, 왜 '센서를 달았다'로 끝나지 않나
순차 공유의 핵심 대책인 SSM(속도 및 이격거리 감시)은 센서 설치로 완성되지 않아요. 사람이 접근하면 로봇이 멈추도록 하려면, 센서가 사람을 감지한 순간부터 로봇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필요한 거리 — 최소 안전거리 — 를 미리 계산해 그만큼을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이 거리는 사람의 접근 속도, 로봇의 동작 속도, 센서·제어계의 반응 지연, 로봇의 정지시간, 침범거리를 모두 반영해 산출됩니다. 그 산식의 근거가 ISO 13855예요. 라이트 커튼이든 레이저 스캐너든 이 '접근 속도 기반' 산식을 따릅니다. SSM 이격거리 산정은 ISO/TS 15066에도 규정돼 있지만 계산이 복잡해서, 여기서는 접근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ISO 13855를 기준으로 다룰게요.
여기서 자주 혼동되는 표준이 하나 있어요. 번호가 비슷한 ISO 13857은 인체의 상지·하지가 위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정하는 안전거리(가드·개구부·구조물의 이격) 표준으로, 목적이 다릅니다. 특정 도달·관통 상황의 보충 거리로만 ISO 13855 계산에 인용될 뿐, 접근 속도 기반 안전거리 산식 자체는 ISO 13855의 몫이에요. 두 번호를 뒤섞으면 계산의 근거가 어긋납니다.
현장에서는 이 안전거리 계산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애초에 그런 계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 결과 센서를 설치하고도 '안전거리가 충분함을 검증했다'는 증명은 비어 있게 됩니다.
PFL 검증은 무엇을 증명하나
동시 공유 — 사람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협동하는 구간 — 에서는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인체에 허용 가능한 수준의 힘만 전달되도록 동력과 힘을 제한(PFL)하고, 이를 검증해야 합니다.
일반 작업 위험원은 정성적 등급 산정(가능성과 중대성의 조합)으로 상당 부분 다룰 수 있어요. 그러나 동시 공유 구간의 충돌은 다릅니다. 인체 부위별 허용 힘·압력이라는 정량 기준을 실제로 충족하는지를 따져야 하거든요. '평가했다'고 적기는 쉬워도 '허용 가능한 수준임을 확인했다'고 증명하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 검증은 ISO 10218-2와 ISO/TS 15066이 규정하는 충돌안전(PFL) 영역입니다.
주의할 점은 접촉 위해가 힘·압력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열·전기·유해물질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동시 공유 구간의 '위해 없음'은 이 모두를 검증 대상으로 삼습니다.
SSM과 PFL 두 영역 모두 일반 안전 컨설팅이 따라오기 어려운 전문 영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이 지점이, 로봇 사용 기업의 위험성평가가 일반 양식만으로는 '운영했음'을 증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입니다.
Safetics View
로봇 안전에는 분명히 해 둘 전제가 하나 있어요. 안전한 로봇(Safe Robot)이 안전한 응용(Safe Application)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로봇이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로봇이 놓인 현장이 안전하다는 사실은 다른 층위의 문제예요. 충돌·끼임처럼 로봇 작업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위험은 응용 수준에서 — 공간 공유 방식에 맞춰, 각 구역의 표준에 따라 — 실제로 검증되어야 비로소 '허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정 대응,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리했습니다.
개정이 무엇을 바꿨는지 전체 맥락은 딥리포트에서 다룹니다 → 위험성평가, 이제 '했는가'가 아니라 '운영했는가'

